오픈소스의 역사

0. 소프트웨어 이전의 공유사례

기술적 정보의 자유로운 공유라는 개념은 사실 컴퓨터가 있기 훨씬 전부터 존재했습니다. 예를 들어 요리법은 인간 문화의 시작부터 공유되고 리믹스되었습니다. 물론 이에 대해 누군가 소유권을 주장하는 일도 없었습니다.

자동차 개발 초기에 한 기업은 조지 B. 셀든(George B. Selden)이 처음 제출 한 2 사이클 가솔린 엔진 특허권을 소유했습니다. 이 특허를 통제함으로써 그들은 업계를 독점하고 자동차 제조업체가 그들의 요구 사항을 준수하도록 강요하거나 소송을 제기 할 수있었습니다. 1911 년 독립적인 자동차 회사인 헨리 포드(Henry Ford)는 셀든의 특허에 대한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 셀든의 특허는 거의 쓸모 없게되었고 새로운 협회 (이후의 자동차 제조업 협회)가 형성되었습니다. 새로운 협회는 모든 미국 자동차 제조업체들 간에 크로스 라이선스 계약을 제정했습니다. 각 회사는 기술을 개발하고 특허를 출원 할지라도 이러한 특허는 공개적으로 공유되었으며 모든 제조업체간에 돈을 교환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이 제 2 차 세계 대전에 들어설 즈음에는 92 개 포드 특허와 다른 회사의 515개의 특허가 제조업체들 사이에서 금전의 교환없이 공유되었습니다. 물론 법적 소송도 없었습니다.

1. 초기의 자유 소프트웨어

1950~60년대엔 거의 모든 소프트웨어들이 학자들과 기업의 연구자들의 공동작업으로 만들어졌고, 주로 공용 도메인 소프트웨어로 공유되었습니다. 따라서 오랫동안 확립된 공개와 협력의 원칙하에 배포되었고, 소프트웨어 자체가 상품으로 취급받진 않았습니다. 이 때에 사람이 읽을수 있는 형태의 소스코드는 소프트웨어와 함께 배포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사용자들이 하드웨어나 OS에 따라 실행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고, 버그 수정이나 기능 추가를 위해서 소프트웨어를 자주 수정해야 했기 때문이였습니다. 특히 IBM의 거의 모든 소프트웨어들이 소스코드와 함께 배포되었고, 사용자들이 SHARE와 같은 그룹을 형성해서 소프트웨어를 교환했습니다.

하지만 196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OS와 프로그래밍 언어 컴파일러는 진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소프트웨어 생산비용은 하드웨어에 비해 급격히 증가했고 하드웨어 제조업체끼리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제한된 라이선스로 판매되는 소프트웨어들이 증가했습니다.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반에 컴퓨터 벤더와 소프트웨어 전문 회사들은 라이선스에 비용을 부과한 후 소프트웨어를 "프로그램 제품" 으로 마케팅하고 저작권이나 상표를 이용해 새로운 소프트웨어 개발에 법적 제한을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1983년에 IBM은 더이상 소스코드를 배포하지 않겠다고 발표했습니다.

2. 계속된는 비공식적인 공유

그러나 소스 코드를 계속 다른 프로그래머 또는 사용자와 자유롭게 공유하기를 원했던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애호가"및 "해커"라고 불렸습니다. 인터넷이 도입되고 널리 보급되기 전까지 컴퓨터 잡지 및 컴퓨터 프로그래밍 서적과 같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공유를 할 수있었습니다.

SHARE 프로그램 라이브러리

1955 년에 설립된 SHARE 사용자 그룹은 자유 소프트웨어를 수집하고 배포하기 시작했습니다. SHARE로부터 최초로 배포된 문서는 1955 년 10 월 17 일자로 발행되었습니다. "SHARE 프로그램 라이브러리 에이전시"(SPLA)는 특히 자기 테이프에 정보와 소프트웨어를 배포했습니다.

DECUS 테이프

1980 년대 초, DECUS 테이프는 DEC 장비 사용자들의 자유 소프트웨어 전송을 위한 전세계적인 시스템이었습니다. 운영 체제는 일반적으로 사유 소프트웨어 였지만 TECO 편집기, Runoff 텍스트 포맷터 또는 List 파일 목록 유틸리티와 같은 많은 도구는 사용자의 삶을 더 쉽게 만들고 DECUS 테이프에 배포하기 위해 개발되었습니다. 이러한 유틸리티 패키지는 DEC의 독점 운영 체제의 새로운 출시에 통합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컴파일러조차도 배포 할 수 있었고, 그 사례로 Ratfor 와 Ratfiv는 연구원이 Fortran 코딩에서 구조화 프로그래밍으로 이동하는 것을 도왔습니다. 1981 DECUS 테이프는 아마도 사용자가 VMS 운영 체제에서 실행되는 DEC 16 비트 PDP-11 및 32 비트 VAX에서 Unix 계열 시스템을 사용할 수있게 해주는 소프트웨어 도구 가상 운영 체제를 로런스 버클리 국립연구소에 도입함으로써 가장 혁신적이었을 것입니다. 현재의 Windows 용 Cygwin 시스템과 유사합니다. 바이너리와 라이브러리는 종종 배포되었지만 사용자는 일반적으로 소스 코드에서 컴파일하는 것을 선호했습니다.

1980 년대 온라인 소프트웨어 공유 커뮤니티

80 년대에는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과 함께 소스 코드가있는 소프트웨어가 BBS 네트워크에서 공유되었습니다. 이것은 때로는 필요성이었습니다. BASIC 및 기타 해석 언어로 작성된 소프트웨어는 소스 코드로만 배포 할 수 있었으며 그 대부분은 프리웨어였습니다. 사용자가 그러한 소스 코드를 수집하고 수정을 논의하기 위해 특별히 보드를 설정하기 시작했을 때 이것은 사실상 하나의 오픈 소스 시스템이었습니다. 가장 확실한 사례 중 하나는 가장 많이 사용 된 BBS 시스템 및 네트워크 중 하나 인 WWIV입니다. WWIV는 BASIC에서 Wayne Bell이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소프트웨어를 수정하고 수정판를 배포하는 문화는 매우 커져서 소프트웨어가 Pascal, 그리고 C ++로 포팅되면 소스 코드가 등록 된 사용자에게 배포되고, 사용자는 수정판을 공유하고 자신만의 코드를 컴파일합니다. 다른 많은 BBS 제작자가 공유 한 Fidonet 우산 밖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지배적인 시스템 및 네트워크가 되는데에는 이런 문화가 기여했을 수도 있습니다. 1980 년대 초 Usenet과 UUCPNet의 출현으로 프로그래밍 공동체는 연결이 강화되었고, 프로그래머가 자신의 소프트웨어를 공유하고 다른 사람들이 작성한 소프트웨어에 기여할 수있는 더 간단한 방법을 제공받게 되었습니다.

3.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과 GNU프로젝트

리차드 스톨만(Richard Stallman, 1953~ )은 당시 MIT의 인공지능 연구소에 근무하던 유능한 프로그래머였습니다. 그는 연구소에서 일하던 동료 프로그래머들이 하나씩 돈을 벌기 위해 떠나고, 그들이 소프트웨어 저작권과 돈 때문에 분쟁에 시달리는 것을 보고 현재의 상업적 소프트웨어 경제 시스템의 문제점을 통감합니다. 스톨만은 1970년대 소프트웨어가 컴퓨터 하드웨어로부터 떨어져 나오면서 상업적인 제품으로 팔리기 시작한 것은 지극히 잘못된 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모든 소프트웨어는 무제한 공유되고 무료로 배포돼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MIT를 떠나 상업용 소프트웨어와의 전쟁을 선포합니다.

그는 1983년에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free software movement)을 시작하고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Free Software Foundation)을 설립했습니다. 이 운동의 목적은 사람들이 서로 협력하는 것을 막는 사유 소프트웨어를 반대하고 사람들이 소프트웨어를 자유롭게 사용하고, 읽고, 수정하고, 재배포 할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유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젝트인 GNU프로젝트를 시작하므로서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의 공식적인 시작을 알렸습니다. 스톨만과 프로그래머들은 시스템 소프트웨어를 만들기 시작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소프트웨어드은 모두 무료로 개방돼었습니다. 프로그래머라면 누구나 GNU의 소프트웨어를 가져다가 수정하고 개량해 사람들에게 재배포 할 수 있었습니다.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은 C 컴파일러나 텍스트 에디터, 시스템 라이브러리와 같은 기술적으로 뛰어난 소프트웨어들을 만들었지만, 정작 OS의 핵심 모듈인 커널(kernel)은 개발하지 못했습니다. 이를 위한 최초의 커널은 바로 리눅스(Linux)였습니다.

4. 리눅스의 등장

1991년에 헬싱키 대학에서 컴퓨터과학을 공부하던 중에 리누스 토발스(Linus Torvalds, 1969~ ) 는후에 ''리눅스''라고 불릴 운영체제 커널 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새로운 PC의 기능을 사용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기존의 OS와 독립되고 자신이 사용하고 있던 하드웨어에 맞게 프로그램을 작성했습니다. 그는 처음에 그의 발명을 "Freax"라고 부르고 싶어했습니다. 개발을 쉽게하기 위해 그는 그의 파일들을 FUNET의 FTP서버에 업로드했습니다. 서버의 자원 관리자인 Ari Lemmke는 "Freax"가 별로 좋지않은 이름이라 생각했고 토발스와 상의하지 않고 "Linux"라고 이름을 정했습니다. 나중에 토발스는 "리눅스"란 이름에 동의했다고 합니다.

이때까지 GNU프로젝트는 커널이 개발되지 않았고 이는 자유로운 OS가 아직 만들어지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하지만 리눅스는 자유롭게 개발될수 있는 커널이었고 이는 프로그래머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리눅스는 빠르게 GNU소프트웨어들의 가장 인기있는 선택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시스템을 스톨만은 처음에 Linux와 GNU를 합쳐 "Lignux"란 단어를 썼지만 이는 후에 "GNU/Linux"라는 단어가 대체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흔히 Linux라 하지만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은 이런 시스템이 GNU/Linux로 불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리눅스의 공식 마스코트는 펭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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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이 선택된 이유는 그들이 한창 마스코트를 정하고 있을때, 토발스가 새끼 펭귄에게 물리는 일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 펭귄의 이름은 Tux 입니다.

5. 오픈소스의 탄생

1997년에 에릭 레이먼드(Eric S. Raymond, 1957~ )는 해커 커뮤니티와 자유 소프트웨어 분석에 대한 철저한 분석인 <성당과 시장>(The Cathedral and the Bazaar)을 발표했습니다. 이 분석글은 엄청난 관심을 끌었고 넷스케이프(Netscape)가 자신들의 인기있던 인터넷 제품군인 넷스케이프 커뮤니케이터를 무료로 배포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넷스케이프의 행동은 레이먼드와 다른 사람들이 자유 소프트웨어의 원칙과 장점을 상업적인 소프트웨어 산업에 이용할수 있는 방법을 찾게 했습니다. 그들은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의 사회적 행동주의가 회사들에게 호소력이 없다고 생각했고 소스코드 공유의 잠재력을 알릴수 있도록 자유 소프트웨어운동을 재 브랜드화하는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1998년 1월 넷스케이프의 네비게이터에 관한 소스코드 배포에 관해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은 전략 회의를 열었습니다. 이 회의에서 토드 엔더슨, 래리 앙구스틴, 존 홀, 샘 옥맨, 마이클 티맨, 에릭 레이먼드는 크리스틴 피터슨이 제안한 오픈소스란 단어를 채택했습니다.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의 개척자인 스톨만도 이 단어를 쓰기로 결정합니다. 레이먼드와 다른 사람들은 이를 자유소프트웨어가 가지고있던 공짜(free)같은 부정적인 의미를 벗어날수 있는 기회로 여기고 이 단어를 널리 알리는데 힘썼습니다.

6. 마이크로소프트와 오픈소스

자유 소프트웨어가 대중화되면서 Microsoft와 같은 산업계의 종사자들은 이를 심각한 위협으로 간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1998년에 마이크로스프트의 인증을 받은 유출된 문서에서 나타났고, '할로윈 문서' 중 첫 번째로 불리게되었습니다.

마이크로 소프트는 GPL(GNU 일반 공중 사용 허가서 ,General Public License)을 암과 같이 비교했지만 이내 그만두었습니다. 실제로 Microsoft는 오픈소스가 Microsoft Windows 환경의 중요한 부분이 된 이후 오픈 소스를 인정하여 일반적으로 오픈 소스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을 완화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암암리에 Microsoft가 한 행동들은 오픈 소스 커뮤니티에 좋게 작용하지 않았습니다.

오픈 소스에 대한 Microsoft의 기여

2006 년 Microsoft는 Microsoft 플랫폼을 목표로하는 오픈 소스 개발자를위한 호스팅을 제공하기 위해 CodePlex 오픈 소스 코드 호스팅 사이트를 시작했습니다. 2009 년 7 월 Microsoft는 GPL의 요구사항에 의해 Hyper-V 지원 패치를 Linux 커널에 공개하여 주요 커널에 제공했습니다. Hyper-V 자체는 오픈 소스가 아닙니다. 2002 년에 만들어진 Microsoft의 F # 컴파일러도 Apache 라이선스에 따라 오픈 소스로 발표되었습니다. F # 컴파일러는 오픈 소스가 아닌 Visual Studio에 통합되어 상업적 제품입니다.

2012 년에 Microsoft는 오픈 소스 기준을 사용하여 독점적 인 Microsoft 기술과 타사 기술 간의 간격을 메우기 위해 Microsoft Open Technologies Inc.라는 자회사를 설립했습니다. 이 자회사는 이후 오픈 소스 및 비 Windows 플랫폼에 대한 Microsoft의 입장이 유리 해짐에 따라 Microsoft로 다시 통합되었습니다. 2016 년 1 월, Microsoft는 MIT 라이센스하에 Chakra를 오픈 소스로 발표했습니다. 코드는 GitHub에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유럽 집행위원회와 Microsoft의 분쟁 (2004-2007)

2004 년 유럽 연합 집행위원회 (European Commission)는 워크 그룹 소프트웨어 시장의 상호 운용성과 관련하여 Microsoft가 반 경쟁적 행위를 저질렀다고 판결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01년에 미국에서의 재판에서, 컴퓨터 제조사에게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사전 설치하도록 강요한 사건이 이미 있었습니다.

위원회는 경쟁사가 작업 그룹 소프트웨어와 상호 운용 할 수 있도록 작업 그룹 프로토콜에 대한 전체 문서를 작성할 것을 요구했고 Microsoft의 불이행에 대해 하루 150 만 유로의 벌금을 부과 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위원회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유럽에서 문제의 소프트웨어를 판매하기 때문에 관할권을 가졌습니다.

Microsoft는 유럽 재판 시스템을 통해 이 결정을 항소하지 못한 끝에 결국 요구 사항을 준수하여 자세한 설명서를 대량 제작했습니다. Samba 프로젝트는 작업 그룹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Microsoft의 유일한 경쟁자로서이 문서의 주요 수혜자였습니다.

ISO OOXML 논쟁 (2008 -)

2008 년 국제 표준화기구 (International Organization for Standardization)는 Microsoft의 Office Open XML을 국제 기준으로 삼았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는 법률 및 정책에 따라 개방형 표준을 사용해야하는 프로젝트에서 Microsoft Office를 사용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과정에 참여한 ISO 국가위원회의 일부 구성원을 포함하여 비평가들은 과정의 불규칙성 및 절차상의 위반을 주장하고 문서화되지 않은 Microsoft Office 동작을 참조하기 때문에 ISO가 OOXML을 표준으로 승인하면 안된다고 주장했습니다 .

2012 년 현재 OOXML에 대한 오픈 소스 구현이 완벽하게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OOXML에 대한 비평가들의 이행이 어렵고 구체적이지 못하다는 의견을 입증 할 수 있습니다. 현재 Google은 Office 문서를 자체 독점 Google 문서 형식으로 올바르게 변환 할 수 없습니다. 이는 OOXML이 진정한 개방형 표준이 아니라 Microsoft Office의 기능을 설명하고 일부 파일 형식만을 포함하는 부분적인 문서임을 의미합니다.

7. 오픈소스와 프로그래밍 언어

현재 사용중인 프로그래밍 언어의 대부분은 무료 소프트웨어 구현이 가능합니다.

1990 년대 이래로 오픈 소스 컴파일러 또는 인터프리터의 형태로 새로운 프로그래밍 언어가 출시 된 것은 예외가 아닌 일반적인 것이 었습니다. 예를 들어 1991 년의 Python, 1995 년의 Ruby, 2003 년의 Scala 등이 있습니다. 최근 주목할만한 예외로는 Java, ActionScript, C # 및 Apple의 Swift 버전 2.2전까지 사유적인 경우입니다. 부분적으로 호환 가능한 오픈 소스 구현이 대부분 개발되었으며 Java의 경우 주요 오픈 소스 구현이 상업용 버전과 매우 비슷합니다.

Java

자바는 1991년 6월 셋톱 프로젝트를 위해 제임스 고슬링(James Gosling)이 만들었습니다. 이 언어는 원래 제임스 고슬링의 사무실 밖에 있던 오크 나무를 따다 오크(Oak), 혹은 그린(Green) 이라고도 불렀으나, 단어 리스트 중 무작위로 뽑은 자바(Java)를 선택했습니다. 고슬링의 목표는 C/C++ 스타일의 언어와 가상 머신을 구현하는 것이었습니다. 첫 공개 자바 버전은 1995년의 자바 1.0 이었습니다. 한 번 쓰고 어느 곳에도 실행 "Write Once, Run Anywhere"하는 것을 약속하였고 인기 플랫폼에 무료 런타임을 제공하였습니다. 이 플랫폼은 꽤 안정성을 지녔고 보안 시스템은 여러 설정을 통해 네트워크 및 파일 접근을 통제할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브라우저들은 곧 자바 애플릿(Java Applet)을 웹 페이지 안에서 실행할 수 있었고 자바의 인기는 급상승했습니다. 자바2(JDK 1.2 ~ 1.4)의 출현으로 여러 다양한 플랫폼에서 사용할 수 있는 설정(Configuration)들을 만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J2EE는 엔터프라이즈 애플리케이션을 실행할 수 있고, J2ME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실행할 수 있습니다. J2SE는 스탠다드 에디션으로 지정되었습니다. 2006년에 마케팅용으로 Java EE, Java M, Java SE 순서대로 명칭을 바꾸었습니다

썬 마이크로시스템즈는 1997년 ISO/IEC JTC1 표준화 그룹, 그리고 나중에는 ECMA International 그룹과 접촉하여 정식 승인을 받으려 했으나 곧 이 프로세스에서 철수했습니다. 자바는 사실상 (de facto)의 표준이며 자바 커뮤니티 프로세스(Java Community Process)를 통해 관리되고 있습니다. 썬 마이크로시스템즈는 자바의 대부분을 무료로 배포하였으나 오픈이 아닌 사유 소프트웨어였습니다. 썬 마이크로시스템즈는 자바 엔터프라이즈 시스템같은 특정 라이선스를 팔아서 수입을 올렸습니다. 썬(SUN) 사는 자사의 개발용(소프트웨어 개발 키트 (SDK))과 개발용의 일부인 실행용(자바 런타임 환경, JRE)을 구분한다. 실행용에는 컴파일러, 유틸리티 및 여러 개발용 헤더 파일이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2006년 11월 13일 썬 마이크로시스템즈는 대부분은 자바를 GPL 라이선스로 소스를 오픈하였으며 2007년 5월 8일 이 과정을 마쳤습니다. 썬 마이크로시스템즈가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은 대부분의 코어 부분을 오픈하였습니다. 2009년 4월 20일 제작사인 썬 마이크로시스템즈가 오라클과 인수합병됨에 따라 자바에 대한 권리 및 유지보수 또한 오라클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8. 배포된 버전 컨트롤

최초의 오픈 소스 분산 개정 관리 시스템 (DVCS)은 2001년의 GNU arch였습니다. 그러나 후임 baz와 bzr (Bazaar)는 그다지 인기가 없었으며 GNU arch는 개발 중단되었습니다. Bazaar는 여전히 계속 사용되고 있으며 Canonical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DVCS 프로젝트가 생겨나고 일부는 많은 채택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Git

그 이후로 가장 인기있는 DVCS가 된 git는 2005 년에 만들어졌습니다. git의 탄생계기는 좀 특이합니다. 일부 리눅스 커널 개발자는 비트 커퍼 (BitKeeper)라는 사유 DVCS를 사용하기 시작했지만, 다른 개발자들은 그것의 사유성 때문에 절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리눅스 커널 개발자들이 사유 소프트웨어를 쓰는 특이한 상황은 앤드류 트라이얼 (Andrew Tridgell)에 의해 종료되었습니다. 그는 이 상용 제품과 동일한 기능을 제공 할 수있는 오픈 소스 툴을 제작하기 위해 비트 키퍼 (BitKeeper)를 리버스 엔지니어링하기 시작했고 이를 확인한BitKeeper를 개발한 회사인 BitMover는 2005 년에 특정 커널 개발자에게 부여한 무료 라이센스를 취소했습니다.

BitKeeper 라이센스가 없어진 후 리누스 토발스는 그 만의 git이라는 DVCS를 작성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기존의 오픈 소스 DVCS가 커널 유지 관리자로서 자신의 특별한 요구에 적합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그가 처음에는 BitKeeper를 채택한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많은 다른 개발자들이 신속하게 뛰어 들어 도움을 주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git은 비교적 단순한 콘텐츠 추적기에서 오늘날의 정교하고 강력한 DVCS로 성장했습니다. 토발스는 더 이상 git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git은 Junio Hamano에 의해 오랫동안 유지되어 왔고, 많은 개발자로부터 계속해서 기여를 받고 있습니다.

git과 같은 오픈 소스 DVCS의 인기가 높아지고 나중에 DVCS 호스팅 사이트 (그중 GitHub(2008~)이 가장 인기많음)가 자유 소프트웨어 프로젝트 참여의 장벽을 점차 허물었습니다. GitHub과 같은 사이트 덕분에 기여자들은 더 이상 소스 코드 저장소의 URL을 찾아야하거나, 패치를 생성하는 방법을 알아 내고, 필요한 경우 올바른 메일 리스트에 등록하여 패치 메일을 올바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일들을 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기여자는 단 한 번의 클릭으로 저장소의 사본을 포크하고 수정할 준비가되면 해당 브랜치에서 끌어 오기 요청을 할 수 있습니다. GitHub는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를 위한 가장 인기있는 호스팅 사이트가 되었으며, 포크의 용이성과 포크의 가시성과 함께 기여자가 크고 작은 변화를 일으킬 수있는 대중적인 방법이되었습니다.

9. 최근 개발

FOSS 작성자가 소프트웨어의 라이센스 준수를 보장하기 위해 사용하는 주요 법적 메커니즘은 저작권이지만 법령, 소프트웨어 특허 및 상표와 같은 다른 메커니즘도 사용됩니다.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은 특허권과 DMCA에 대한 법적 문제에 대응하여 DMCA의 디지털 저작권 관리 (DRM) 조항과 특허권을 명시 적으로 다루는 2007 년 GNU GPLv3을 발표했습니다.

GNU GPLv3의 개발 이후, GNU 컴파일러 콜렉션 (GCC) 소프트웨어와 같은 많은 GNU 시스템의 저작권 소유자인 FSF는 GPLv2에서 GPLv3에 이르는 GNU 프로그램의 라이센스 대부분을 업데이트했습니다. GCC, DRM과 특허의 사용자인 애플은 Xcode IDE의 컴파일러를 GCC에서 다른 FOSS 컴파일러인 Clang으로 전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Clang은 허가 된 라이센스 하에 있었습니다. LWN은 애플이 GPLv3을 피하려는 계기에서 부분적으로 동기를 부여받았다고 추측했습니다. 삼바 프로젝트 또한 GPLv3으로 전환했습니다. 애플은 소프트웨어 스위트에서 폐쇄 형 소스 독점 소프트웨어 대안으로 교체했습니다.

최근의 합병은 주요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Sun Microsystems (Sun)는 2008 년에 인기있는 오픈 소스 MySQL 데이터베이스의 소유자 인 MySQL AB를 인수했습니다.

오라클은 2010 년 1 월 Sun을 인수하여 저작권, 특허 및 상표권을 획득했습니다. 이로 인해 오라클은 가장 인기있는 독점적 데이터베이스와 가장 유명한 오픈 소스 데이터베이스 (MySQL)의 소유자가되었습니다. 오픈 소스 MySQL 데이터베이스를 상용화하려는 오라클의 시도는 OSS 커뮤니티에 우려를 제기했습니다. 부분적으로 MySQL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 대응하여 OSS 커뮤니티는 프로젝트를 오라클의 통제 범위를 벗어난 새로운 데이터베이스 시스템으로 전환했습니다. 그중에는 MariaDB, Percona, Drizzle 등이 있습니다. 이들 모두에는 별개의 이름이 있습니다. 그들은 별개의 프로젝트이며 상표 등록 된 이름인 MySQL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안드로이드

2008 년 9 월, Google은 새로운 스마트폰 운영체제 인 Android의 첫 번째 버전을 오픈 소스로 출시했습니다. Android에서 번들로 제공되는 일부 Google 애플리케이션은 오픈 소스가 아닙니다. 초기에 운영체제는 Google에 의해 무료로 배포되었으며 많은 핸드셋 제조업체에서 열심히 채택했습니다. 구글은 나중에 모토로라 모빌리티 (Motorola Mobility)를 인수하여 자체 "바닐라 (vanilla)"안드로이드 폰과 태블릿을 생산하면서도 다른 제조업체들도 안드로이드를 계속 사용할 수있게 했습니다. 안드로이드는 현재 세상에서 제일 인기있는 모바일 플랫폼입니다. 안드로이드가 리눅스 커널을 기반으로하기 때문에, 이것은 리눅스가 현재 안드로이드를 통한 모바일 플랫폼과 슈퍼 컴퓨터에서 지배적인 커널이고, 서버 운영체제의 주요 플레이어이기도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크로미엄

최근까지도 리눅스는 여전히 데스크탑과 랩톱을 위한 운영 체제의 비교적 드문 선택이었습니다. 그러나 크롬 OS를 실행하는 크롬 북은 300 달러 이하의 노트북 컴퓨터 시장에서 20-25 %를 차지했습니다. Chrome OS는 Linux를 기반으로하는 오픈 소스 Chromium OS를 기반으로하며, 휴대 전화에 출시되는 Android가 Android의 오픈 소스 버전에서 제작되는 것과 같은 방식입니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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